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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 2019-07-09 05:23:06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보컴, 리처드.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형일, 안영미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9.



저자에 대해서

영국의 신약학자다. 케임브리지 대학교(B.A., M.A., Ph.D.)에서 공부했으며, 리즈 대학교와 맨체스터 대학교를 거쳐 1992년부터 2007년에 은퇴할 때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 리들리홀의 명예교수(Senior Scholar)로서 케임브리지 신학대학 연합(Cambridge Federation of Theological Colleges)에서 강의하며, 런던 성 멜리투스 칼리지(St. Melitus College)의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국학사원(FBA) 및 에딘버러 왕립협회의 선임연구원, 영국 국교회 교리위원회 회원이기도 하다. 대표적 저서로는 『예수와 그 목격자들』,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이상 새물결플러스), 『요한계시록 신학』(한들), 『유다서, 베드로후서: WBC 성경주석』(솔로몬), 『예수: 생애와 의미』(비아), Gospel Women (2002) 등 다수가 있다



요약

이 책은 저자인 리처드 보컴(Richard Baukham)이 여러곳에 발표하였던 소논문들을 엮은 책이다. 그러므로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묶여 있으나, 글과 글 사이의 연결성은 없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근거하여서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됨을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였는가?"라는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해서는 각 장(章)별로 간단한 요약 및 Review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신약 본문과 주제에 대해서는 신약 성서에 대한 학문적인 배경 지식이 빈약한 관계로, 이 책의 Review는 구약의 본문을 다루는 장을 중심으로 하고, 초대 교회와 신약 성서를 다루는 장에 대해서는 요약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1장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보컴은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 사상에 근거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승천하여서 하늘 보좌에 앉고 세상을 다스린다(롬8:34; 엡 4:10; 히 4:13)는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말한다. 유대교에 바탕을 둔 기독교는 철저한 유일신 사상의 믿음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다는 혁명적인 신학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유일신 사상과 배치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보컴은 학자들이 보통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제2차 성전시대의 유대교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고 지적한다. 

    제2차 성전시대 유대교에는 다신론적인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영적인 존재로서의 천사, 그리고 그 천사를 숭배 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헬레니즘 철학적인 신관을 바탕으로 기록된 에녹서에서는 심판의 날에 인자(人子)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제2차 성전시대에 살고 있었던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에녹서를 알고 있었다. 유대교에서 에녹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경전이기도 했다.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시작을 한 기독교 공동체는 에녹서가 말하는 '최후의 날에 보좌에 앉은 인자의 심판'이라는 생각을 예수에게로 적용하여 유대교 공동체가 말하는 '최후 심판의 날에 보좌에 앉으신 인자'가 예수님이라는 신학적 해석을 해낸 것이다. 

    보컴은 유대교의 뿌리에서 해석을 하려고 했던 경향성을 벗어나 성경 자체에서도 이미 최후의 날에 인자가 하나님과 함께 심판하신다는 고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보컴은 예수가 승천하여 하늘 보좌 위에 오르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 시편 110:1과 시편 8:6, 그리고 이사야 52:13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편 110:1)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시 8:6)

"보라 내 종이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사 52:13)


이 구절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고유한 세상의 주권에 동참하신다는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보컴의 주장이다. 


비평: 1장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첫번째, 유대교의 뿌리에서 벗어나 성경 자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의 다스리심을 설명하려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과연 성서 해석과 하나님을 이해하는 종교, 그리고 유대교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적 하나님 이해를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두번째, 보컴이 제시한 핵심적인 시편의 구절 가운데, 시편 8:6과 연관된 시편 8:5는 보컴이 의도했던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오히려 배치된다.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인자(人子)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또는 사본에 따라서 인자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편을 어떻게 예수와 연관을 시킬 것인지, 본문에 대한 비평과 정당한 해석이 없다. 

    세번째, 보컴이 제시한 구절들이 유대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신앙과의 충돌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보컴은 예수가 승천하고, 보좌에 앉고, 심판함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본인이 지적하는 바와같이, 그것 때문에 유대교에서 제기한 의문, "과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주고 있지는 않다.  보컴이 제시한 빌립보서 2:6-11과 요한계시록 1:8; 2:8; 21:6; 22:13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의 예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고백이지, 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바는 아니다. 

    네번째, 보컴은 이사야 52-53, 45장을 빌립보서 2:6-11과 연관시켰는데 (intertextuality), 보컴의 노력과는 별개로, 두 본문 사이에 연결을 지어줄 문학적인 연관성(Literary allusion)을 찾을 수 없다. 


2장 성서신학과 유일신론의 문제들 


보컴은 맥도날드(McDonald)를 반박하고자하는 반대 진영의 대표 인물로 삼아, 이스라엘 민족이 가졌던 유일신 신앙을 설명한다. 맥도날드는 구약 성서를 기록한 이는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십계명에서 제 1계명과 쉐마(신 6:4)는 순종과 예배로 표현되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는 명령이지, 여호와 이외의 다른 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맥도날드의 이런 견해는 다른 구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에 반대하여서 보컴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고 나머지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타적인 유일신론"]. 보컴은 쉐마의 신학은 하나님의 하나이심(Oneness)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약 시대에도 쉐마를 반복함으로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유일신 신앙을 지켜나갔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배타적 여호와 신앙이 왕정 시대에 만들어 졌고, 그 이전의 가나안 신앙이 발전한 것이 여호와 신앙이라는 것에 반대한다. 또 바벨론 포로기에 이르러서야 정치, 종교적 위기 상황에서야  혁명적 산물로 유일신 신앙이 만들어 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3:28-30; 11:36; 고린도전서 8:1-6에서 쉐마를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쉐마의 중심 주제인 유일한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의 이야기와 예수를 병렬 시키려고했다는 것이 보컴의 주장이다. 


비평: 2장 성서신학과 유일신론의 문제들 


구약 학자들은 고대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설명할 때, 그 시대로 되돌아가 주변 나라들과의 신앙의 문제를 문화사(文化史), 또는 종교사(宗敎史)의 입장을 취한다. 고대 국가와 도시들은 저마다 자기들을 지켜주는 신들이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영역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신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것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보컴은 교리의 눈으로 성경을 이해하였다. 보컴이 구약 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억지 스럽다. 또한 쉐마가 이미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오직 신으로서의 여호와 하나님 고백이라는 전제로 쉐마가 등장하는 구절마다 유일신 신앙의 흔적이라는 억지스런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 장의 목표인 성서 신학의 유일론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어떻게 신약 성서의 기록자들이 연결시켰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쉐마가 인용되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언급되는 것 만을 주목한다. 독자들이 궁금한 것은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一神] 신앙을 가진 유대교 공동체에 뿌리를 둔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의 하나님되심을 설명하면서(위에서 언급된 바울의 서신 이외에도, 요한복음 10:30을 참조하라.), 이것이 두 신[二神]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론적인 근거인데 말이다. 


3장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의 본질


보컴은 3장에 이르러서야 본인이 생각하는 배타적 유일신에 대한 정의를 드러낸다. 즉, 세상에 천사, 사탄들과 같은 초자연 존재들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이들의 존재가 배타적 유일신 신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컴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초기 유대교 문헌에서 매우 자주 성전에서 제사와 기도를 받으시는 분으로 묘사되며, 초기 유대교의 시대(제2차 성전 시대)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어구가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관용어를 대치하는 표현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구약 학자들이 신명기 32:8-9을 들어서 이것이 구약 시대에 다신론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과, 이 구절을 근거로 유대교 안에서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비평: 3장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의 본질


보컴은 초기 유대교가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구약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불편해 한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배타적 유일신 신앙에 대한 정의는 유대교/기독교 공동체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설명이다. 

    보컴의 견해에 조금 더 살을 붙여본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이 신들이라 섬기는 해, 달, 별, 바다와 하늘, 물, 동물과 나무들과 같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라는 창세기 1장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의 고백이 배타적 유일신 신앙의 또 다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보컴의 구약 성경 본문 신명기 32:8-9의 해석에 대해서는 많은 비평의 여지가 있다. 이 본문 뿐 아니라, 시편 97:9; 82:6에서는 이미 시편을 노래하는 시인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들이 있다. 


4장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예수 경배 


보컴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가장 이른 증거는 "마라나타" מָרָנָא תָא (우리의 주님, 오소서. 고전 16:22, 디다케 10:2; 이후에는 계시록 22:20)라는 아람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사도행전 13:2에도 나타나며,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로 기독교인들을 표현한 로마서 10:12-14; 사도행전 9:14,21; 22:16; 디모데후서 2:22 역시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섬겼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컴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처음에는 예수께 드려진 기도와 감사, 그리고 그를 존경함의 표현이 먼저였고, 차츰 차츰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보컴은 이전의 교회 학자들이 예수를 하나님 그 분 자체로 경배하게된 이유를 설명하는 시도 가운데, 유대교 배경에서 시작한 기독교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헬레니즘 세계의 신(神) 관념의 영향으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대한다. 오히려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리더십이 유대교에 바탕을 둔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끌어졌음을 지적하면서 유대교 유일신 신앙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음을 주장한다.

    특별히 보컴은 마태가 예수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프로스퀴네오" προσκυνέω를 사용한 것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그리스어 구약 성경에서는 자주 하나님을 향해 구푸리는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들을 독자로 상정한 마태복음에서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예수를 향하여 사용함으로 단순히 존경받는 선생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향하여 예배해야 함을 넌지신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하신 분께/그에게/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는 송영에서도 드러난다고 보컴은 주장한다. 이 표현이 가리키는 영광 받을 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 문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를 첨가하면서 (롬 16:27; 유 2:5; 디다케 9:4 등등), 유대교적인 표현을 기독교화 하였다는 것이 보컴의 주장이다. 

    예수를 찬송하는 찬송의 역사는 기독교 공동체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이는 유대교에서 부르는 하나님 찬송과 견줄 수 있다고 보컴은 주장한다. 시편이 하나님을 향한 노래였다면, 기독교의 찬송은 예수를 향한 시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컴은 유대교에 바탕을 둔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를 예배하는 것이 한 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이유 중의 하나를 플라톤의 포괄적 유일신론의 채택을 든다. 플라톤주의에서는 경배를 최고의 신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급 신들에게도 예배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관점에서 성부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었고, 로고스인 예수는 최고의 하나님에게 예속된 신이라는 개념이 초대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비평: 4장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예수 경배 


초대 교회에서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경배하였다는 신약 성서의 흔적들에 대한 보컴의 통찰은 매우 명료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 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어떻게 충돌하지 않았는지, 유대교에 바탕을 둔 초기 교회에게 어떤 방식으로 한 분 하나님과 예수와의 관계를 명료하게 설득하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플라톤주의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은 이전 장에서 유대교의 전통 아래에서 예수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인지했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자신의 논문과 모순을 이룬다. 


5장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 경배


유대교 유일신론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창조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유일한 분' 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2차 성전시대의 문학에는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과 "지혜"가 함께 일하고, 하나님의 보좌에는 모세와 의로운 사람들도 함께 앉을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제2차 성전시대의 이런 신관(神觀)은 다니엘 7:13-14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다니엘에서 하나님은 인자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에게 정치적인 복종과 제의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데에 까지 나간다. 특히나 에녹의 비유들 (The Parables of Enoch, 흔히들 '에녹1서'라고도 부른다.)에서는 하늘에 있는 유일한 보좌에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 앉아서 예배를 받게 된다는 신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컴은 이런 제2차 성전시대의 유대교 문학의 틀 안에서 천상적인 존재들이 하늘보좌에 앉아서 다스리는 것이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 (빌 2:10-11; 계 5:12-14). 그렇다면, 예수는 그런 천상적인 존재들 중의 하나였던가?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가졌던 천사와 천사 숭배라는 문화에 기대어 본다면, 예수를 천사 중의 하나, 또는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셔서 그의 보좌에 앉히신 사람의 하나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약 성서의 기자들은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의로운 이, 또는 선택 받은 이로 예수를 이해하지 않도록 해야했다. 보컴이 주장하기는 제2차 성전시대의 문학에서는 천사들이 또 다른 천사들을 경배하는 경우가 없는데, 초기 기독교에서는 하늘의 천사가 예수를 경배하고 예배한다고 말함으로 예수가 천사들 같이 하나님에 비해 열등한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가 천사들보다 높다는 것을 변증하고 있으며, 넌지시 예수의 하나님되심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평: 5장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 경배


보컴이 제2차 성전시대의 유대교 문학과 그 문학에 배어있는 유대교의 소재 ('하나님의 보좌', '보좌에 앉으신 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로 유대교에 배경을 둔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이해했는지, 그리고 신약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들 당대의 독자들이 예수를 하나님 보다 못한 천상적인 존재, 또는 반신(半神)정도로 오해하지 않게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에게 예수의 하나님되심을 설득하기 위해서 은근히 어떤 방식으로 예수에 대한 천사들의 경배를 이야기했는지에 대한 명료한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6장 바울의 신적 정체성 기독론 


보컴은 초기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을 (1) 창조적 유일신 신앙, (2) 종말적 유일신 사상, (3) 제의적 유일신 사상으로 정의한다. 

    (1) 창조적 유일신 신앙은 하나님 홀로, 절대로 조언자나 협력자나 조력자 없이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만물의 유일한 창조자이자, 만물의 유일인 주인이라는 것이다. (2) 종말적 유일신 신앙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실 때, 여호와가 그의 우주적인 왕국을 세우시고, 그의 이름을 우주적으로 알리시고, 또 모든 이들에게 이스라엘이 알고 있던 그 하나님으로 널리 알려지게 하시며, 마침내 모든 민족에게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밝히 보여주시리라는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3) 제의적 유일신 신앙은 오직 만물의 유일한 창조주이자 만물의 유일한 주인 만이 경배를 받아야한다는 믿음이다. 

    보컴은 이런 측면에서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적 유일신 신앙과 제의적 유일신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종말적 유일신 신앙은 창조적 유일신 신앙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 셋은 늘 함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컴은 이 세개의 초기 유대교의 신앙의 특징을 하나님에게서 예수로 옮긴 인물을 바울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첫번째 바울은 여호와 (70인역에서는 '주님' κύριος)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하고 여호와 관련 본문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13)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과 동격의 위상을 가진 예수의 우주적 통치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해서 이사야 45장을 대본으로 이를 암시하는 빌립보서 2:6-11를 기록하였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6-11)


    초기 기독교에서 이런 경향성은 바울 서신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보컴은 바울 서신 밖에서 어떻게 예수가 여호와 (κύριος)를 대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열한다. 


비평: 6장 바울의 신적 정체성 기독론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려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노력에 대한 보컴의 명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신(二神)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호와와 예수의 관계를 어떻게 하나의 신[一神]으로 증명하였는가에 대한 불명료함이 계속 반복되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 그의 설명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독특한 정체성 안에 예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독특한 정체성 안에 예수를 포함 시킴으로 유일신을 보존하였다."이다. 아직도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7장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수의 신성 


만일 예수가 하나님 이라면, 하나님이 가진 그의 정체성, 창조자, 영원한 존재자, 모든 것 보다 뛰어난, 영원한 존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요한복음 서문과 골로새서 1장, 그리고 히브리서 1장은 바로 예수의 하나님 됨을 증명하고 있다. 보컴은 특별히 히브리서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히브리서 1장은 예수가 (1) 아들 됨, (2) 주님 됨, (3) 제사장 됨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아들 되었다는 것은 인간과의 연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임을 드러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주(主)됨은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그리고 제사장됨은 예수의 대속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그의 정체성이라고 보컴은 이야기한다. 

    히브리서는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보컴은 '예수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를 천사들보다 낮은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찬양을 받는 존재로 예수를 묘사함으로 곧 천사들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말한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천사 보다 뛰어난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찬양을 받는 예수의 이미지는 그가 하나님 되심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컴은 히브리서에서 예수의 하나님됨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영원하고 홀로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다분히 헬레니즘의 철학적 신념을 차용한 것이라고 에둘러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헬레니즘 철학에 의하면, 참 신은 기원이 없고 출생도 없다. 또 참 신은 스스로에게 기원을 두며, 스스로 출생한다. 또한 언제나 동일하고, 만물의 처음, 중간, 그리고 마지막이 된다. 히브리서는 이런 예수의 상(像)을 그리고 있다고 보컴은 주장한다. 


8장 마가복음에 나타난 버림 받은 자들과 하나가 되신 하나님


보컴은 마가복음에서 가장 인간적인 고통을 받는 예수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던 예수의 모습은 시편 22:1과 서로 겹쳐지면서, 고난받는 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결국은 그렇게 절규하던 예수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듯, 마가의 시대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고난의 상황을 겪고 있는 신앙 공동체에게 결국은 그들도 예수처럼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메세지를 준다고 보컴은 설명한다. 보컴은 예수의 죽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셨고, 예수의 모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됨으로 진정한 하나님이 되셨다."


요약 정리와 리뷰를 마치면서 


먼저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공부를 하면서 처음 접한 표현인 "승귀하신 예수"라는 단어에 한문이나 영어로 괄호 한번 넣지 않은 것은 매우 불친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이 책의 원서인 "Jesus and the God of Israel: God Crucified and Other Studies on the New Testament’s Christology of Divine Identity"을 찾아서 "승귀"라는 단어가 "exalted"의 번역이며, "승귀하신 예수"가 "The exalted Jesus"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아직까지 왜 이 표현이 "승귀하신 예수"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하늘의 보좌에 앉으시어) 찬양 받으실 예수" 또는 "존귀하신 예수" 정도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번역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예수의 하나님되심을 변증하려고 노력하였는가에 대해서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떻게 유일신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되심'이 두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만 던지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질문으로 시작한 저자가 내놓을 답에 대한 기대감으로 책으로 읽은 필자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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