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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 2019-06-27 11:21:42


책 제목

심보선,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파주:문학동네, 2019


저자에 대해서

시인, 사회학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앞에 없는 사람』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예술비평집 『그을린 예술』이 있다.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를 옮겼다. 김종삼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약

사회학자이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교수인 심보선의 글은 "검은색"이다. 작가의 글은 너무 힘이 들어가있고, 이쁘고 좋은 말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아직 '시인'으로 불리기에는 공감있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그가 과거에 썼거나,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묶은 산문집의 형식의 책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쉽다. 꼭 읽으시라고 권할 만한 책이 알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우스개 소리로 눈, 코, 입, 귀, 이마, 따로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참 이쁜데, 얼굴 하나에 함께 하니 어울리지 않아 못생겼다는 우수개 소리가 딱 어울리는 책이다. 단어 하나 하나는 이쁜데, 문장으로 엮어지니 어설픈 번역과 같은 글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작가의 사색보다는 그가 인용했던 이들의 말글들이 더 튀어 나온다. 그래서 이 리뷰는 그의 글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그가 인용했던 말들에 대한 리뷰가 더 적절하리라.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12년에 타계한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는 한번 쯤은 들어 보았을 의미 심장한 싯귀이다. 노벨상을 받은 것때문에 주목 받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은둔 생활을 했던 쉼보르스카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기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셸리는 "아무도 창조자의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 신과 시인 이외에는" 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야 말로 언어로 창조자와 창조자가 만든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쉼보르스카는 말한다. "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의 수혜자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말이죠. 이 세상에 그런 의사들은 늘 있어왔고, 그런 교사들, 그런 정원사들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성경에는 직업적인 예언자들이 있었다. 성경은 사무엘 시대(삼상 10:10) 이후로 선지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체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교육받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받았은 자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다. 사울을 보라! 하나님의 영감은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하다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과 귀, 그리고 손과 코로 전해지는 선물이다. 


많은 유품이 그러하다. 망자에게 의미가 있기에, 그리고 그 망자가 산 자에게 의미가 있기에 유품은 의미를 가진다. - 심보선 "그 쪽의 풍경은 환한가?"


구약과 신약을 Old TESTAMENT 그리고 New TESTAMENT라고 한다. TESTAMENT는 '신조'와 '신념', 무언가를 입증하는 '언약'을 뜻하는 말이다. 대략 20년 전쯤, 필자가 유대학을 공부하던 중에 The 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읽는 이 책의 겉장을 접하면서, "열 두명의 족장(야곱의 열 두아들들)이 무슨 성경을 썼던가?" 의문을 가졌었다. 함께 공부하던 미국 친구들이 TESTAMENT가 "유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부끄러웠던지... 그러고보면, 예수님 이전의 신앙의 조상들이 남겨 놓은 말(유언), 예수님 시대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말(유언)이 구약과 신약이다. 이 땅에 홀로 남겨질 자녀들을 위해서 남겨 놓는 신앙의 부모들의 심정이 성경에 녹아있고, 그것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의 선조들의 삶의 의미를 되집어 가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 


인격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향해 가꾸고 유지하는 '사람다움'이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흔히들 인격을 정의하면서 인용하는 말은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없을 때 하는 나의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김현경의 글로부터 영감을 받아, 인격을 '나의 행동'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로 확장시켰다. 누구와 함께 하지 않고, 어느 골방에 홀로 있을 때 나의 사람됨도 중요하려니와, 나의 사람됨이 드러나는 공간은 누군가와 만나는 장소이다. 나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분노하기도 하고, 나의 행동거지 하나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기도 한다. 반대로 나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죽음의 길에서 돌아서기도 하고, 나의 행동 하나에 누군가는 예수님을 만나기도 한다. 그 말과 그 행동은 갑작스레 튀어나오지 않는다.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당연하려니와 누군가를 만났을 때에도 여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다움'의 품위, 그리스도인 다운 말과 행동, 나의 인격, 나의 신앙의 인격을 가꾸고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만 덧붙이자. 비록 한자의 인격은 '사람됨'이지만, 교회 공동체도 '공동체의 인격', '교회의 인격'이 있다. 이 인격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통용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다움'이 아니라, 공동체를 뛰어 넘어, 공동체가 만나게 될 그들을 향해 우리가 가꾸어 나가야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다움'이다. 


악한 일은 대부분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렌트의 말에 의하면, 악은 '깊이 생각하지 못함'이라는 평범한 오류에서 시작한다.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명령을 수행한 평범한 관료는 한 정부와 집단에서는 꼭 필요한 말 잘 듣는 능력자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무능력이 있었다. 말하기의 무능력, 사유의 무능력,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력. 결국 이 무능력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목회자도 무능력할 수 있고, 성도들도 무능력할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러다보면, 글자에 빠지고 글자에 복종하게 된다. 성경의 글자가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글자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이다. 아렌트는 그것을 '무능력'이라고 부른다. 


전체주의에 저항한 시민혁명은 때때로 저녁식탁, 서점, 시낭독회에서 시작했다. - 제프리 골드파브 "작은 것들의 정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력, 엄청난 인맥, 잘 갖추어진 시스템을 먼저 구축하려고 하지만, 때때로 아주 작은 모임에서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기도 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소소한 작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워나아가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삶의 의미들이 크게 나아가서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바꾸는 것을 보라! 

    교회도 그렇다.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의 삶도 그렇다.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찾아내는 주님의 뜻, 가장 작은 것부터 바꿔 나가는 나의 삶.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하는 작은 것과 공감하는 여럿이 모여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됨'은 사실 엄청난 프로그램이 아니라, 가정에서 나누는 신앙의 대화(조금더 발전된다면 가정 예배), 속회(의무적으로 참석해야할 것같은)와는 별개로 신앙 서적을 읽고 나누는 교인들 사이의 소소한 대화(조금더 발전된다면 독서 토론) 등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면서 


이번 책은 읽기가 매우 불편한 책이었다. 내용의 불편함이 아니라, 배운 티를 내는 단어들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의 격에 맞지 않는 내용의 빈약함도 참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글을 쓴 이에게만 의미있는 말글들의 잔치가 글을 읽는 독자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 달의 추천 도서'라는 타이틀을 '문학동네'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분명하리라 추측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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