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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당신이 옳다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 2019-06-19 00:26:19


당신이 옳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서울: 해냄, 2018



저자에 대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05년 전두환정권에서 무고하게 고문을 당하고 18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던 박동운 선생을 만난 이후로 1970~80년대 고문생존자,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치유자로 살았다. 최근에는 해고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과 민간잠수사들을 치유하는 일을 했다. 지은 책으로 『정혜신의 사람 공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공저) 『당신으로 충분하다』 『홀가분』 『사람 vs 사람』 『남자 vs 남자』 등이 있다.



요약

교회 성장학자인 칼 조지(Carl George)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로서 메타 교회(Meta church)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메타 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대처하는 제도, 조직, 의식을 가진 교회'이다. 이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예상하고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계속 변화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적어도 메타 교회가 정의하는 교회의 정체성에 교인 하나 하나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 깊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는 현재의 목회자가 교인들을 만나는 태도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와 같은 책, 현대의 교회가 관심을 두고 목회자들이라면 한번 꼭 읽어볼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 메타 교회의 목회자는 관리자이지만, 예수님께서 언제 관리자로 이 땅에 오셨던가! 교회라는 조직에서 관리가 목회의 일부가 되기는 하였지만, 목회의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작가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핵심어로 삼는다. 요즈음 '공감'이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공감에 대한 정의는 알겠으나, 어떻게 공감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친절한 안내서가 없다. 많은 공감에 대한 안내서들은 공감했던 예들과 그렇게 공감했더니,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다는 '보고서'와 같은 예들만을 나열할 뿐,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공감'에 대한 정의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는 작가의 경험 속에 만들어낸 가장 소박하고도 단순하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공감'을 정의하고 있다. 


적정심리학 


작가는 "적정심리학"이라는 생소한 심리학 용어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다 알고 있고, 가지고 있지만 한번도 전쟁터에서 써보지 않은 칼과 같은 말이다. 과학과 첨단 기술이 넘쳐나고 있는 이 시대에 왜 사람들은 여전히 여유가 없으며, 행복하지 않은가?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상에 적정 기술과 그 기술의 분배가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작가는 진단한다. 그렇다면 적정한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정혜신은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의 섬세한 뜨거움"이라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다. 흔히들 말하는 "공감"이다. 

    적정심리학의 가장 좋은 예는 예수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반응을 하신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쳐 죽이러 온 사람에게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는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정의로우신 분'이라고 틀을 짜놓고서 설명하려고만 한다면, 돌로 쳐 죽이러온 사람들에게 야박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틀을 짜놓고서 이 이야기를 설명하려고 하면, 십계명의 일곱째 계명을 어긴 여인을 옹호하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틀조차도 그 여인을 벌하러 온 사람(그들도 역시 죄인)들을 당황케 하신 예수님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적정한 상황, 적정한 시간, 그리고 적정한 장소에서 적정한 사람에게 그에게 맞는 말로 율법을 온전케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적정심리학은,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들을 기초로 사람의 심리를 공식(Fomular)을 가지고 분석하고 병리적인 현상으로 진단해서 의사들과 전문적인 치료사들의 몫으로 한 사람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위로를 떠 넘기는 것을 반대한다. 작가는 '나와 내 옆 사람의 속 마음을 이해하며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으로서 적정심리학을 이야기하고, 적정심리학의 가장 큰 도구로 '공감'을 이야기한다. 


왜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실패하는가?  


대형 사고의 현장에서 오랜 동안 활동한 작가는 전문지식을 가진 심리치유가들이 대형 재난의 현장에 찾아오지만, 곧 철수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병원의 운영을 위한 자본주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들이 재난의 피해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오히려 사회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재난의 현장에 남아 있는데, 왜 심리 치유의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실패하는가? 심리 치유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보다 '환자'라는 생각으로 피해자들을 맞이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들이 '환자'라고 규정하는 순간, 대면하는 사람들은 그저 고통받는 사람일 뿐이다.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 몸부림 치며 절규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 슬픔 때문에 삶이 우울해 지는 것은 자연스런 정신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동시에 고통스러운 경험하는 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알아주기 보다, 심리와 의학 전문가 답게, 딱 전문가처럼 그들을 '환자'로 보고 '약'으로 치료하려는 순간, 전문가로서의 자기 권위를 보여줄 수 있겠지만, 고통스러운 경험하는 하는 당사자들은 마음을 닫아 버린다. 



사람들은 왜 아픈가? 


사람들은 일상에서 누군가의 기대와 욕구에 맞춰 끊임없이 '나'를 지워가는데 익숙해 있다. 그들이 기대하는 '나'로 만드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부모의 기대, 배우자의 기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한 '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조직 사회, 그리고 상하관계가 분명한 사회에서는 상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기대하는 '나'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렇게 계속 나를 지워가다가 정말 '나'가 없어지면,  사라져 버린 자아가 여러가지 모양으로 갑자기 등장한다. 주로 슬픔, 고난, 아픔, 우울함, 폭력 등으로.


공감 


슬픔, 고난, 아픔, 우울함 등, 감정의 깊은 저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가? 지워져 버린 자아가 갑작스럽게 슬픔, 고난, 아픔, 우울함, 폭력으로 나타나 '나'가 있어야할 텅빈 공간에 주인 행세하며 똬리를 틀고 있을 때, 어떻게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작가는 '공감'이 그 치유제라고 말한다. '공감'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알아가야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정혜신은 '공감'을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라고 부르며,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것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공감'으로 가는 첫 대화의 단추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이 옳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그 감정을 외적이 표출이 어떠하든, 무조건 옳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 작가는 어떤 누군가가 어떤 생각, 어떤 감정,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의 말과 행동에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구나"라고 말로 동의하고 상대가 왜 그렇게 말하고, 느끼고, 행동했는지를 물어보고 경청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정의한다. 

    또 [2] 그가 달고 있는 계급장과 돈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그! 그의 일상을 찬찬히 묻고, 세세하게 물어보면서, 함께 그의 뒤를 바짝 따르는 것을 '공감'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공감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이 '당신이 옳다'이다.  

    정신과 의사인 작가는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 치료가들이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따라 그 사람의 과거의 상처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인위적인 방법을 거부한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현재의 감정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하며,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할 만한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그 사람의 현재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공감'하면, 자연스럽게 과거가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공감의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


"공감과 관련해 일종의 클리세가 있다. 공감은 누가 이야기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토달지 않고 한결같이 끄덕이며 긍정해 주는 것, 잘 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전혀 잘못 짚었다. 그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지친다. 참다 참다 인내심을 잃고 폭발하거나, 폭발하지 않더라도 지치고 짜증이 나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게 된다... 나라도 참아 줘야지 하며 눈을 질끈 감고 버티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이렇듯 상대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 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한다. 스스로에게 따스하게 물어줘야한다. 

    언제나 나를 놓쳐서는 안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공감하는 일은 응급실 당직 의사처럼 상대에게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의무가 되면 결국 내가 먼저 나가떨어진다."



심리적 CPR (심폐소생술)


"심폐소생술은 심장 외 다른 장기들은 제쳐놓고 오로지 심장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응급처치다. 심장 기능만 돌아오면 몸의 다른 모든 기능은 알아서 연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옧을 젖치호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 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 놓는다. 심리적 CPR도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이 책이 알려지면서, 이 책을 대표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심리적 CPR'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서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는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하는 심리적 CPR는 "요즈음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이다. "외모나 경력, 학벌이나 스펙처럼 그 존재가 달고 있는 액세서리를 언급하며 던진 화사한 질문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자연인으로서 그의 존재 자체, 그 중에서도 존재의 핵심인 감정에 에 대한 주목과 안부를 묻는 질문!" 이 질문을 장대비처럼 쏟아 붓는 것이 심리적 CPR이다. 


마치면서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잠언 18:13)


목회자는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다. 목회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가 심방하고 상담을 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만나면 그들이 해야할 바가 충.조.평.판.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 말'이다.) 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심리 치료가들이 대형 재난의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외면을 받듯, 충.조.평.판.에 익숙한 목회자들은 교인들로 부터 외면을 받는다. 다만, 자신들의 신앙의 갈등을 '공감'해 주지 못하는 설교와 성례전 집전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목회자)로 존경할 뿐이다. 

    교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액세사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감정과 혼돈에 집중하며, 그런 혼란스런 감정과 신앙을 가진 '그'를 주목하는 일.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럴 만한 이유들을 세세하고 묻고, 듣고, 그의 길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목회자가 교인들과 영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첫 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 이기에 심리적 CPR ("요즈음 마음이 어떠세요?")과 함께 신앙적 CPR ("요즈음 예수님과 함께 하고 계시나요?")를 반복적으로 장대비 처럼 쏟아 부으며 그 사람의 심리와 함께 신앙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목회자와 교인과의 관계 뿐 아니라, '나'와 '나의 감정'의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나의 말과 행동에는 드러나는 나의 감정과 더불어, 이 감정을 만든 감정 내면의 경험과 상처들이 있다. 성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목회자들도 말과 행동으로 실수한다. 때로는 매우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때로는 매우 방어적인 말과 행동으로 동료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스스로 내 말과 행동에 숨어있는 감정과 그 감정을 만든 나의 경험과 삶의 궤적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나를 내 스스로 다독이며 치유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에게 이렇게 질문하라고 조언한다. 


"넌 누구니? 지금 네 마음은 어떤 거니?"

"그래서 행복했니?"


오늘부터 '감정의 일기', '영성의 일기'를 써보자. 그리고 나만의 일기 속에 내 감정에 숨어있는 '나'를 이렇게 아프게 만든 그것을 찾아들어가보자. 그리고 심리적, 영적 CPR를 장대비처럼 쏟아 붓자. "넌 누구니? 지금 네 마음은 어떤 거니?" "그래서 행복했니?" "요즈음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거야?" 


작가가 소개한 공감의 말들 


"집에 또 못 들어가고 있구나.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

"그렇구나.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지쳤구나, 다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구나,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 그런 맘을 들게 했던 그 일이 구체적으로 뭔데?"

"상담 선생님에게 얘기를 듣고 엄마는 진짜 놀랐어. 네가 그렇게 힘든 줄 엄마가  미처 몰랐어. 미안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네 마음은 지금 어떠니?"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네 마음은 어땠던 거니?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니?"

"어떨 때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엄마, 죽음이 가까운 것같아? 죽는 게 무서워? 요즘 누구 생각이 가장 많이나?"

"성적이 많이 올랐구나. 네가 이번에 정말 노력을 많이 했나 보다. 참 애썼어."

"지금 자기한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지금 말하면서도 맘이 편치 않겠다, 그렇지 않니?"

"나는 미처 몰랐지만, 너는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엄마 맘이 이런 거야. 진짜야. 너한테 진짜 미안해."


작가가 소개한 충조평판의 말들(하지 말아야할 말들) 


"그런 생각은 잊어. 너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그럴수록 네가 더 열심히 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지."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봐."

"그건 너를 너무 사랑해서 한 말일 거야."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니?"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야, 별다른 사람 있는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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