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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꽃들에게 희망을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 2020-05-10 13:11:05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안애리 역. 부산: 선영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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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서

저자 트리나 폴러스는 작가이자 조각가, 운동가이다. 국제여성운동단체인 ‘그레일(The Grail)’ 회원으로, 공동 농장에서 10년 넘게 지내며 직접 우유를 짜고, 채소를 재배하기도 했다.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살려 자신의 조각품을 판매했는데 그 수익금은 공동체에 돌아가게 했다. 트리나 폴러스는 특히 그레일에서 벌이는 국제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집트의 아흐밈에서 여성 자수협동조합 설립을 돕는 것 외에도 프랑스, 포르투갈에서 일하기도 했다. 콜로라도의 산에서 영구 경작법을 배우기도 한 트리나 폴러스는 뉴저지 주에 살고 있는데, 이곳의 집은 현지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식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소규모 환경 센터이기도 하다.



요약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삶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 줄무늬 애벌레의 이야기이다. 90년대 청소년 시절을 보낸 이들의 책장에 한권쯤 꽂혀 있을 만한 책이기도하다. 하도 오래 되서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번쯤 읽어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책장을 펴면,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인생의 심오함을 배울 수 있는 책이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줄거리 1: 기둥을 오르다

 

알에서 깨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욕구를 따라 살아간다. 애벌레의 삶은 풀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풀도 잠시 욕구를 채워줄 뿐 궁극적인 기쁨이 되지 못했다. 비슷한 처지의 애벌레들이 먹는 것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실망하던 호기심 많은 줄무늬 애벌레는 거대한 기둥을 마주한다. 애벌레들이 기어오르고자 서로를 밟고 올라가는 모습이 멀리서는 거대한 기둥으로 보인 것이다. 그 기둥의 맨 꼭대기는 구름 속에 가려져 있어서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모처럼 무언가를 해보고자하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저 속에 있는지도 몰라." 줄무늬 애벌레는 들뜬 마음으로 다른 애벌레에게 물었습니다. "쟤들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아니?" "나도 금방 도착했어, 아무도 설명해 줄 수 없이 바쁜 모양이야. 저렿게 어딘지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설치니 말이야." 그는 대답했습니다. "먼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애벌레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건 아무도 모를 거야, 하지만 바쁘게 가는 것을 보면 틀림 없이 좋은 것이 있을거야. 나도 빨리 가봐야겠어." (23-24쪽)

그러고는 그들처럼 그 기둥을 오르기로 마음 먹는다. "오직 한가지 선택 뿐이군." 그도 그 속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25쪽)

기둥에 올라서기 위해서 줄무늬 애벌레는 밀고 차고 밝으며 올라가야했고, 또 밀리고 채이고 밟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그 기둥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기둥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생각하면 안되었다. 생각하려고 잠시 서는 순간 이미 누군가가 자기를 밟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줄거리 2: 친구를 만나다

 

기둥을 오르다 노랑 애벌레를 만난다. 노랑 애벌레는 기둥을 올라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차마 그 생각을 입을 꺼낸다는 것조차도 두렵고 부끄러워 마음으로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밟고 올라가야하는 상황에 부딛친다.

 

그러던 어느날, 오직 하나 뿐인 올라가는 통로를 막고 서 있는 그녀와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자, 네가 밟히느냐 내가 올라 서느냐 이거다." 하고 그녀를 밟고 올라서고야 말았습니다. 날카롱누 시선을 쏘아보는 눈빛을 보고 자기 자신이 무서운 놈이라 느꼈습니다.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든 과연 저런 행동을 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줄무늬는 밟고 있던 노랑이로부터 기어 내려와서 속삭였습니다. "미안해" ... "내려가는 게 어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응 그러자." 이제 그들은 올라가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수 많은 애벌레들이 그들을 밟고 올라오기 때문에 서로를 꼭 껴안았습니다. (35-37쪽)

 

한 동안 에덴동산과 같았던 그들의 관계는 서로 익숙해 지면서 다시 무력감이 찾아온다.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와 함께 풀을 먹으며 살면서도 '삶은 정녕 무언가 지금 이 이상의 것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호기심과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줄무늬 애벌레는 다시 기둥을 오르기로 마음 먹는다.

 

"난 안가겠어." 그녀는 가슴이 터질 듯 미어지면서도 말했습니다. 줄무늬는 그녀를 두고 올라갔습니다. (56쪽)

 

줄거리 3: 늙은 애벌레와의 만남

 

노랑 애벌레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늙은 애벌레를 만난다. 늙은 애벌레는 날기 위해서 (나비가 되기 위해서) 자기를 바꾸어야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애벌레들이 되야하는 궁극의 것이 '나비'라고 가르쳐 준다.

 

"그것은 네가 되어야할 바로 그것이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며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지. 그것은 꽃에 있는 달작지근한 꿀만을 먹으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 주기도 한단다. 나비가 없으면 이 세상에 꽃이 없어지는 불행이 올지도 모른단다." (62쪽)

늙은 애벌레는 자기 안의 나비를 보지 못하는 노랑 애벌레에게 모든 생명체에게 '겉 모습'과 '참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도망가는 것이 아니란다.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머무는 휴게소나 같은 것이란다. 애벌레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하나의 커다란 발전이야.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너나 나 또한 누구의 눈에도 변화가 없는 것철머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비가 만ㄷ르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68)

 

노랑 애벌레는 용기를 얻고자 늙은 애벌레의 고치 바로 옆에 매달려서 자신의 실을 뽑아낸다.

 

줄거리 4: 다시 기둥을 오르는 줄무늬 애벌레

 

다시 기둥을 오르는 줄무늬 애벌레는 이전의 실패(?)를 거울 삼는다. 과거에 그 기둥을 오르다가 만난 노랑 애벌레와의 인연으로 그 기둥에서 내려와야 했던 기억을 반면 교사를 삼아, 감상적인 생각이 들지 않게 무조건 위만 보면서 올라간다. 오히려 더 독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그처럼 오르는 벌레들도 모두가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다.

 

"저것들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겠는걸!" (81쪽)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아래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여기야." (83쪽)

 

기둥의 맨 위에 올라신 줄무늬 애벌레는 오히려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기둥 위에 올라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래에서 올라오는 애벌레들, 또는 아래에서 허덕이는 애벌레들에게 자기의 우위를 보이기 위해서 정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맨 위의 애벌레 몇몇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기둥 위에 올라서니 이 기둥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기둥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음을 본다.

 

"야! 저기 좀 봐, 또 다른 기둥이야 -저기에도-저기 또-사방에 다 있네!" 줄무늬 애벌레는 실망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내가 올라온 이 기둥이 수많은 기둥들 중의 하나라고! 참으로 어리석구나! 정말 잘못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데, 하지만...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는 신음과 한숨을 토해 내었습니다. (84쪽)

 

줄거리 5: 기어오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기둥 위로 황홀한 노랑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날라다닌다. 누구를 밟고 서 있지도 않다. 그리고 그 높은 이곳 저곳으로 마음껏 날아 다닌다. 내려가는 것도 올라가는 것도 자유자재다.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이다. 노랑 나비가 된 친구 노랑 애벌레를 본 줄무늬 애벌레는 이내 방향을 바꾸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비로서 자기 안에 나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날을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돌 수' 있는 거야!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단 말이야!" ...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96쪽)

 

결국 노랑나비의 도움으로 줄무늬 애벌레도 나비가 된다.

 

  1.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하던, 또는 인생에서 홀로서기에 성공을 하던지 간에 "자수성가"는 없다. 세상은 얽혀있다. 줄무늬 애벌레에게는 노랑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에게는 늙은 애벌레가 다음 단계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촉매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2. 연민으로부터 참 공동체성이 만들어 진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이라는 말이 때로는 상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단어의 원래 의미를 따라가면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매우 가치가 있다. 연민은 그를 대가없이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고,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게하는 힘이다.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을 밟고 올라가다 그 마음을 가지고 되었고, 그 기둥에서 함께 내려온다. 노랑 애벌레는 기둥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줄무늬 애벌레에게 그 마음을 가지고 나비의 삶을 가르쳐 주고자 한다. 각자의 연민은 자기 뿐 아니라, 상대를 변화시킨다.
  3. 기다림은 열매 맺는다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와 줄무늬 애벌레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눈빛의 교감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하지만 이미 둘은 너무나 다른 존재이다. 한 단계 너머에 있는 사람과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생활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이 차이는 대화의 단절에 이른다. 그러나 노랑 나비는 줄무늬 애벌레의 곁에서 계속 자기를 드러내며 애벌레가 꿈꾸어야할 미래를 보여준다. 침묵으로 기다리면서.
  4. 자기 합리화로 치부해 버릴 만한 선택과 옳은 선택 사이 기둥을 여전히 올라가려고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올라가는 애벌레들은 기둥에서 내려가는 줄무늬 애벌레를 패배자로 낙인 찍는다. 그러나 기둥에서 내려오는 줄무늬 애벌레는 기둥을 오르려 경쟁하는 애벌레들의 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본다. 그들은 모두 나비를 품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나비인 줄도 모르고 날려고 하기 보다는 기어 올라가고 밟고 올라가려는 그들을 보면서 아파한다. 올라가려는 애벌레들은 내려가는 줄무늬 애벌레의 외침에 패배자의 자기 합리화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이미 나비를 본 줄무늬 애벌레는 그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한다.
  5.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바뀐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이렇게 끝맺는다. "끝...아.니.이.제.부.터.새.삶.의.시.작.입.니.다." 그리고는 두개의 그림이 곁쳐진다. 하나는 기둥을 허물고 내려오는 애벌레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전히 기둥을 만들고 올라가는 애벌레들이다. 기둥에서 내려온 애벌레들은 다음 장의 그림이 고치가 되었고, 나비가 되었다. 그러나 무너져 내린 한개의 기둥보다 더 많은 기둥들이 그 뒤에 서있다. 늙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줄무늬 애벌레가 나비가 되었다고 세상은 갑작스레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늙은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를 나비의 세계로 인도하고, 노랑 애벌레가 줄무늬 애벌레에게 나비의 세상을 알려준 것처럼, 줄무늬 애벌레는 기둥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일 지라도!
  6. 꽃들에게 희망을 책의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지만, 이 책에 정작 꽃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잠시 그려진 그림에는 스쳐지나가듯 왔다가지만, 글의 줄거리에 꽃들이 하는 역할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책의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이 꽃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에게 굳이 꽃들에게 희망이 되라며 짐을 지워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꽃가루 운반의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각인시킬 필요도 없다. 애벌레가 나비되었을 때, 애벌레가 자기 속의 나비를 찾아 삶의 높은 경지에 올랐을 때, 꽃은 피고 희망도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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