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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빈자의 ㅁㅣ학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 2020-03-14 13:49:57

빈자의 미학

승효상. 빈자의 미학, 서울: 느린걸음, 1996



저자에 대해서

저자 승효상은 1952년 부산 출생.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온 일곱 가구가 깊은 마당을 두고 모여 사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동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수여했다. 1974-1980년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을 설계했다. 1980-1982년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하며 ‘마하르트 뫼비우스&파트너 Marchart Moebius und Partner’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 귀국 후 1986-1989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역임했다.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건축가 승효상」전을 가졌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의 건축작업은 현재 중국 내의 왕성한 활동을 포함해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 걸쳐 있다.


요약

산업의 발달과 함께 자본과 기술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현대식 건축물이라 불리는 높은 빌딩과 아파트로 대변되는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주거의 형태가 삶의 쉼터라는 개념보다는 경제적 풍요로움의 척도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건축물에서의 미학으로 ‘빈자’라는 상당히 절제되고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이 책은 '건축'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가 다루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은 단지 건축이라는 영역을 뛰어 넘어 기독교인의 삶에도 무거운 메세지를 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가 얻을 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준다.

    승효상은 ‘빈자’라는 가치를 건축물들에 표현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건축의 범주를 결정짓는 판단 기준 세 가지를 설정한다.

 

건축의 세 기준

첫째는 합목적성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적절한 기능과 규모를 배분하고 합리적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목적을 정당히 수행하는 것이 합목적성이다. 학교는 학교같아야하고 교회는 교회같아야하며 집은 집 같아야한다는 것이다. 무덤으로 쓰였던 피라미드를 륭내내어 음식점을 한다든지 민주적 의사 결정을 목표하는 의사당이 봉건적 건물 형식이 된다든지하는 것은 그 건축의 목적을 배반하는 결과이다.

둘째는 장소성이다. 그 건축이 점거하는 토지의 위치, 모양, 기후, 인문사회적 환경을 발견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장소성이다. 예컨대 조각이나 그림은 작업실에서 제작되어 전시장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설치할 것을 목표로하는 데, 만약 그 설치 장소와 주변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성들여 제작된 설치물이라 할지라도 계륵이 되고 만다.

마지막 셋째는 시대성이다. 그 건축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적 가치, 사상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이 시대성이다.

 

빈자의 미학

저자는 이 세 가지 판단 기준 즉, 합목적성, 장소성, 시대성을 반영한 건축을 함에 있어 빈자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서는 건축에 있어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고 선언한다.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다

건축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시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당연히 내 비추어야 하는 거울이기때문에 건축의 성립 목적을 정당히 수행해야 한다. 화려할 필요도 없고 뽐낼 필요도 없는 본질 그대로를 갖춘 건축물이면 족하다. 저자는 공동체를 발견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의식하게 하는 공간으로 건축물이 세워져야한다고 말한다.

60년대에 들어서 우리 강토에 휘몰아친 ‘잘 살아보세’라는 편향된 가치 추구가, 왜 잘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분별력 없는 구호가 파행적 정치 모 습인 군사독재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내었다. (31쪽)

사회가 불안정한 격변기에 처해 있거나 독재자가 군림하는 시대에서는, 극단적 감정이입을 목적으로 더욱 환상적인 투시도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한 투시도에서 비롯된 건축은 사실을 은폐시키고 그 속의 삶을 왜곡시켜, 결국은 불구적 형태로 사회를 마비시킨다. (77쪽)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다

건축은 현재의 문제된 사실을 해소하는 능력과 미래에의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과 의무가 있다. 건축은 다분히 인공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공은 자연 속에서 언제나 또다른 자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건축이 적절한 기능과 규모의 배분을 통해 과거의 문화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삶의 집합체라면, 건축 역시 그 삶의 한 공동체이다. 영역의 담을 허는 것, 남겨진 공간을 도시에 내어주는 것, 그 속으로 도시의 길을 연장시키는 것 등등은 그러한 열려진 삶을 이루는 첫 번째 방법이다.(79쪽)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

건축은 허황된 장식과 위선의 형태를 버리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념 아래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정신을 포함해야 한다. 저자는 자코메티의 빈곤하기 짝이 없는 몰골 조각상(50쪽)에서 힘과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비유를 통해, 비움이란 단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빈 공간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들로 채워질 수 있음을 피력한다.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막스 피카르트)’ (47쪽)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 네가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네가 무언가 말하려 생각함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러고도 말하기를 그칠 수 없다는 것 혹은 더욱 더 힘들게도 그 일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없다는 것....(Molloy, Samuel Beckett, 1955) (몰로이, 사무엘 베케트 저 김경 의 역, 문학과지성사, 2008)’ (49쪽)

살갗을 접촉하기 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 보다는 구멍을 총해 듣기를 원하는.... 우리는 이제 ‘기능적’이라는 말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81쪽)

 

결론

승효상은 그의 책, 「건축, 사유의 기호」에서 건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장소에 고정되어 그 속에서 삶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건축'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 가서 진실을 마주하여 지니고 있던 환상을 깨는 일이 중요하다.(건축, 사유의 기호 109쪽)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삶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 삶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합목적성, 장소성, 시대성이라는 틀걸이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과감하게 비워내는 것이 '빈자'의 미학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식물이나 디자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건축의 틀걸이에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배제하는 것이 맞다. 부수적인 것으로 건축물이 추구하는 공간의 원래의 목적에 사람들이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 건축물은 이미 합목적적인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장소가 그려내는 수묵화에 갑자기 유화를 덧칠하듯 세워진 공간에대한 거부감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빈자의 미학'에 근거한 건축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짓는 건축이라거나, 허름한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버려야 하고 비워야할 것을 비워내는 것이 '빈자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빈자의 미학'이라는 기준으로 건축을 함에 있어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선언은 매우 중요하다. 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응당 가져야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빈자의 미학'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팔복의 말씀에서도 언급하신 '가난한 자'의 신앙의 삶이 아닐까한다. 보여지는 삶의 외적인 형식을 소중히 여긴 나며지 허영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버려야하고 비워내야할 것을 비워내는 것이 '가난한 사람'의 삶이다. 내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봉사보다는 느림과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를 비워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난한 사람'의 삶이다. 복을 받는 삶, 그리고 복이 되는 '가난한 사람'은 비어있는 그의 삶에 주님이 가득참으로 부요해진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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