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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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서
저자 알베르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38년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공산당에 가입하여 좌익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후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권력화된 집단은 부조리를 양산할 뿐이라고 판단하고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로 전향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작품들에도 반영되는데, 그는 세상엔 불변의 정의나 법칙이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조리 문학’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해진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인간의 윤리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철저한 실존주의자였던 카뮈는, 특히 작품 『페스트』와 『이방인』에서 존재에의 부조리, 무의미한 세계, 끝나지 않은 절망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약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1940년대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다. 까뮈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까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재일 뿐, 그는 인류의 진짜 페스트는 "살인의 광기"라고 말한다.
인간들에게 어느 누구든 남을 단죄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 타루, 그렇지만 누구도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 희생자가 때로는 사형 집행인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타루는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셈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시민들이 과거와 역사에 대한 인식과 반성, 그리고 부조리함과 편견에 대한 반성을 잃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 그렇다는 듯 살아가는 세상을 비판한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경험했던 몰상식한 세계,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쯤은 파리 한마리의 죽음만큼 일상적인 것으로 여겼던 그 세계, 잘 규정된 그 야만성, 계산된 그 광란, 현재의 일이 아닌 모든 것 앞에서의 가졌던 끔찍한 자유를 가져왔던 그 감금 상태, 죽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그 죽음의 냄새 등을, 그것들이 완전히 분명한 사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까뮈의 페스트가 전쟁의 광기 후에 반성없고 진전없는 세계를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소재로 비판하였지만, 전염병이 돌던 오랑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 도시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이 리뷰는 페스트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그 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의 행태를 소개할 것이다. 한번쯤 설교에서 말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어떤 눈으로 볼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둔다.
요약
오랑은 특색 없이 평범한 프랑스의 식민도시이다. 사람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전혀 독특할 것이 없는 이 도시에 굳이 독특한 것(?) 한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의료시설이 열악해서 병든 사람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이 도시에 페스트가 발생한다. 4월 16일에 시작한 징후는 18일부터 공장들과 창고들에서 수백 마리나 되는 쥐의 사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고, 많은 양의 비와 푹푹 찌는 날씨는 전염병의 확산을 더욱 부채질했다. 도청의 보건위원회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고 시민들의 불안을 핑계로 숨기려고만 했다.
그런데도 그날 저녁 당국은 여전히 낙관적으로 공식 발표를 했다. 이튿날 랑스독 통신은 도청 당국의 조치들이 차분하게 시달되었으며, 이미 삼십 여 명의 환자들이 발병 신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공무원들은 시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이 사태를 표현할 ‘문구’(phrase)를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오히려 충분하고 정직하지 않은 정보 때문에 사람들이 불확실하고도 과장된 소문들을 떠드는 바람에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면서 오랑의 랑스독 통신이 날이 갈 수록 죽은 쥐를 수거하는 숫자가 늘어가고 매일같인 몇천 마리의 쥐들이 소각된다는 소식을 들은 오랑의 사람들은 극도로 불안해진다. 시 당국에 대책을 요구하는 사람, 피신할 계획을 하는 사람들도 도시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런데 이튿날 랑스독 통신은, 그 현상이 돌연 멈췄고 쥐 박멸 담당부에서 수거한 죽은 쥐의 수도 무시해도 괜찮은 양이라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더 죽어갔고, 도지사는 프랑스 총독부에 보고했으며 총독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페스트가 유행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도시 폐쇄를 명령한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1) 이별의 픔과 고립감
오랑은 총독부의 결정과 함께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일단 도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서술자 자신을 포함해서 그들은 모두 같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으며, 그런 처지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은 처음 몇 주일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되어 버렸다. 또 그 감정은 두려움과 더불어, 이 오랜 기간의 유배 상태에서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오랑의 사람들은 페스트의 상황이 악화될 수록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통신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갑작스레 폐쇄된 오랑에서의 뜻하지 않은 유배 생활에서는 페스트에 전염되어 죽을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시 밖의 사람들과 차단되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의 슬픔, 그리고 오랑 밖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바이러스로 취급되어 오랑에 갇혀 버린 고립감이 훨씬 더 아팠다. 우편물이 도착하지 않고, 기차가 오지를 않는다. 도시 밖에서들어오는 차도 없다.
그때부터 시민들은 결국 감금된 상태로 되돌아가서 단지 과거만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시민들 중 몇몇이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자하는 유혹을 느끼는 일이 있더라도, 미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인해 결국 얻게 될 마음의 상처를 느끼며, 되도록 빨리 그런 유혹을 떨쳐냈다.
마음으로 얼마라는 날짜를 정해 놓고 그 때가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망을 하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괜찮아 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도 포기해 버렸다.
폐쇄 초기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걸린 일들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래서 짜증과 화들을 내는 일이 빈번하였다. 오로지 기분이 좀 나쁘다는 이유로 언쟁이 생기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일도 만성이 되었다. 분노의 사회로 바뀌어 갔으나, 아무도 낌새를 알아챌 수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변해 갔기 때문이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2) 무관심
여전히 오랑의 주지사는 페스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은 페스트 초기에 불편함을 호소할 뿐, 그 상황의 심각성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일반인들의 반응은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페스트가 발생한 지 3주 만에 302명의 사망자가 생겼다는 보도조차 사람들의 상상력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 모든 사람이 페스트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평상시 그 도시에서 일주일에 몇 명이 사랑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도시에는 20만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 정도의 사망률이 정상적인 것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것은 분명한 이해관계가 드러나 있는데도 사람들은 결코 관심을 갖지 않는, 바로 그런 종류의 자료였던 것이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이 죽음을 애석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단지 일시적인 일이라고 여길 뿐,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호들갑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기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스트 이전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했다. 겁쟁이라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비극을 희화하여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틀림없이 좋지 않은 사건이고 조치이지마, 체면 만은 차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는 기이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식량 보급은 제한되었고, 휘발유는 배급되었다. 심지어 전기를 절약하라는 규정도 생겼다. 유일하게 생활필수품만은 육로나 항공로를 통해 오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교통의 통행량은 점차적으로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거의 없어져 버렸고, 사치품을 파는 가게들은 순식간에 문을 다았다. 다른 가게들은 진열차엥 물건이 떨어졌다는 게시물을 붙여놓았지만, 그러는 동안 가게의 문 앞에는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줄을 지었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3) 내면과의 전쟁, 의심, 그리고 일탈
오랑 폐쇄의 초기는 모두가 자기들의 집에 유배가 되었다. 그러나 사망자의 수가 속출하고 전염의 정도가 심각하게 되자 전염된 이들이 강제로 다른 장소로 옮겨 졌다. 환자들을 다른 장소로 이송하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끊이지 않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밖을 보지만, 이내 서둘러 창문을 닫아 버린다. 그리고 내면에서 싸움과 눈물, 설득과 같은 전쟁이 벌어진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결말을 잘 알고 있는 이별을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페스트와 마주 앉아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고함 소리가 들리고 명령이 내려지고 경찰이 개입하고, 그런 후에는 무력으로 환자가 끌려갔다.
페스트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했다. 그래서 오랑 시당국에서는 외출을 금지하고 규칙을 위반한 이들에 대한 처벌을 이야기했다. 이제 오랑 사람들은 자기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균자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금의 시간이 계속되자,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가서 사치스럽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소비가 희망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긴장을 풀어주는데는 제격이었다. 이 전염병이 심각한 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랑의 시민들은 쾌락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말이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4) 공포를 통해 채우는 소유욕
그 안에서도 욕심을 채우려는 이들은 있었다.
코타르는 자기 동네에 사는 어느 덩치 큰 식료품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상인은 비싼 값에 팔 생각으로 식료품을 저장해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병이 난 그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찾으러 왔다가 침대 밑에 쌓여 있는 통조림 깡통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병원에서 죽었어요. 페스트에 걸리면 본전도 못찾죠.”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생활 필수품들의 가격 상승으로 가난한 집들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였고, 반면에 부유한 집들은 병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부족한 것 없이 일상을 살 수 있었다.
도시의 인쇄업자들도 이익을 볼 틈새가 있었다. 이 병의 언제 끝날지에 대한 점성가들이나 카톨릭 교회 성자들이 말했던 여러가지 예언을 모아서 출판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료들을 모으고 시장에 유포했다. 기자들은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페스트에 대한 예측들을 신문 기사로 쏟아 내면서 인쇄업자들과 손을 잡았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5) 폭력
오랑 시민들의 감정은 고립되었다는 감정과 사람들과 이별했다는 두려움에 공포심과 반항심까지 들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폭력성까지 드러난다. 인구밀도가 높고 살기가 불편한 외곽 지역에서 시작한 페스트는 도시의 중심가에도 자리를 자기 시작한다. 오랑의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없앤다면서 발병자들의 집을 방화하기도 하였다.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과 이들의 격리시킬 임무를 가지고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불안 상황에서 인간의 도덕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보건 상의 이유 때문에 화재가 났거나 폐쇄되었던 집들이 약탈당했다.... 대부분의경우 원래 점잖았던 사람들이 급작스런 기회에 바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으며, 바로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흉내 냈던 것이다. 그렇게 고통으로 망연자실한 집주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집 안으로 달려드는 미치광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무심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본 구경꾼들도 그들의 짓을 따라 했다... 그 후에 절도범 두 명이 총살형을 당했다.
오랑 지역의 유배 상태가 장기화 되면서, 빈곤함이 공포심보다 더 커지게 되었다.
❖ 오랑 시민들의 반응 (6) 무뎌짐
반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와 페스트의 확산에 지쳐 갔고, 점점 그 상황에 대해서 무뎌졌다.
재앙에 맞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씩 밀려들고 있는 탈진 상태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감정에 대한 무관심 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 태만함에 있었다.
❖ 까뮈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들
이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된 인물들은 까뮈가 보여주고 싶었던 위기의 사회를 대처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반영한다.
리외: 리외는 이 글의 서술자이자 의사이다. 오랑에 쥐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상한 낌새를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고, 전염병에 맞서 의사로서 일상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이 전염병이 페스트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내고는 시청의 쥐 박멸 담당부에 전화를 걸어서 시청이 나서야 한다고 요청을 한다. 그리고 오랑시의사협의회의 사무관에게 전화를 해서 새로운 환자들을 격리해 달라고 요구한다.
“저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리샤르가 말했다. “도청에서 조치를 위해야해요. 그런데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말은 누가 했나요?” 그러나, 리샤르는 ‘자기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청의 지사에게 환자의 격리에 대해서 말해보는 것뿐이라고 했다.
리외는 미온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오랑의 태도와 모든 것을 죄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파늘루 신부의 태도에 대해 비평적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파늘루 신부는 학자입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진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낮은 시골 신부라 해도, 자기 교구의 신자들에게 종부 성사를 행해주고 임종하는 사람의 숨소를 들어본 사람이면 저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그 불행의 특별함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 전에, 우선 그것을 보살피려고 할 겁니다.
레몽 랑베르: 아랍인들의 생활 환경을 취재하려고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이다. 오랑 사람들의 보건 상태에 대한 자료가 필요해서 리외를 찾아온다.
리외는 보건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신문 기자가 과연 진실대로 기사를 쓸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물론이죠.” 랑베르가 대답했다. “제 말씀은 과연 당신네들이 철저하게 고발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철저하게는 못합니다. 우선 그것을 말씀 드려야 겠군요...”
페스트가 발병하고 오랑이 폐쇄되자, 랑베르는 그 도시를 탈출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파리에 두고온 여자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떠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리외를 찾아가서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랑베르가 말했다. “저는 이 도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외부인입니다.”
랑베르는 리외와 타루가 오랑의 페스트 환자들을 돌보고 도시의 보건을 개선하는 일에 대해서 영웅주의라고 몰아 세운다. 그러나 완전히 고립된 오랑에서 탈출의 기회를 엿보면서 리외의 일을 돕던 랑베르는 마음이 변한다. 그리고는 오랑을 몰래 탈출할 기회가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한다.
랑베르는 또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자기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그대로 자신이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거북해 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외는 몸을 다시 세우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행복을 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맞아요.” 랑베르가 말했다. “하지만 오직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울 수 있죠... 저는 항상 이 도시에서 외부인일 뿐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이제 겪을 만큼 겪고 나니, 제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저도 이 곳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 있는 일입니다.
장 타루: 오랑 시의 사람은 아니지만, 호텔에서 생활하며 페스트 발병 몇 주전부터 살던 외지 사람이다. 오랑의 예술가들과 어울려 다녔다. 타루는 오랑의 사람들과 면담하며 그들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리외를 도와서 자원보건 조직을 만들게 페스트와 맞서려고 한다.
이제 해야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이며 분명하게 인정하고, 쓸데없는 불안의 그림자를 쫓아버린 후 그것에 대해 적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페스트는 결국 멈출 것이다.
타루가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페스트와 싸우려는 이유는 페스트에 걸려서 죽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때문이었다.
코타르: 어떤 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로 자살을 하려다가 실패하였다. 그 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했다. 그 일로 숨겨진 자기의 죄가 드러나 체포될위기에 있었지만, 페스트의 확산 때문에 경찰력이 모두 페스트에 집중되어 있는 바람에 경찰의 체포를 모면했다. 그는 이 페스트가 빨리 종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죄를 덮는데 페스트 만큼 좋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페스트에 걸려 죽지 않는한, 이 페스트는 코타르에게 횡재이다. 결국 페스트 전염병이 종결된 후 코타르는 경찰에게 체포된다.
파늘루 신부: 파늘루 신부는 오랑의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오랑의 교회 지도자들은 공동체 기도 주간을 발표하고 교회 고유의 방식으로 페스트와 싸웠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 오늘날 페스트가 여러분의 삶에 관여하게 된 것은 깊이 반성해야할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그것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독한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곡물 창고 속에서 무자비한 재앙은 쭉정이와 낟알을 가려내기 위해서 인류라는 밀을 타작할 것입니다...무척 오랫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그 연민의 얼굴을 보여주시던 신께서도, 기다림에 지치시고 영원한 희망에 대해 실망하셔서 마침내 시선을 돌려 외면하신 것입니다. 신의 광명을 잃은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그렇게 함으로써 나머지 나날들은 자유롭게 보내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몇 번 무릎을 꿇으면 여러분의 그 죄스러운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더 오래 보고 싶으셨던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을 살아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치신 하느님은 인류의 역사가 기작된 이후로 재앙이 죄 많은 모든 도시를 찾아들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찾아들게 하신 것입니다.
파늘루는 페스트가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라는 점과 그 재앙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벌이기에 회개하라고 설교한다. 그것이 페스트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파늘루의 설교 이후 오랑은 더 큰 공포가 생겨 났다. 사람들은 공포에 침묵하기 시작했다. 페스트는 자기들의 죄의 결과이므로 페스트에 대해서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자기의 죄를 부정하는 것이거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늘루도 사람들을 살리는 리외의 보건조직에 가담한다. 그가 보건 조직에서 일한 이유는 신부는 의사의 진찰을 받을 일이 없다는 확신에서 였다. 그리고 오랑 지역 예심 판사 오통의 아이가 페스트로 고통받으며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다.
몇개월 전부터 그 무서운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들이 죽는 것을 이미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날 아침처럼 그토록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시시각가으로 살펴본 적은 없었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 없는 순수한 아이가 그토록 오랫동안 임종의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파늘루) 슬며시 무릎을 꿇고는 약간 숨이 찬 목소리로, 그러나 여기저기서 그치지 않고 들리는 그 이름없는 신음 소리들 틈에서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하느님이시여, 제발 이 아이를 구해주소서!”라고 말했다.” 아무도 이런 모습을 부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파늘루는 아이의 죽음을 보면서 매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럼에도 그의 설교의 주제는 흔들림이 없었다.
가장 잔인한 시련조차 기독교인들에게는 여전히 은혜로운 법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추구해야할 것은 바로 그 은혜이며, 그 은혜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파늘루는 대략 페스트로 인해 벌어지는 광경의 이유를 굳이 납득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그것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들을 배우려고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리외가 막연하게나마 이해한 것은, 신부로서는 페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기독교의 신자들에게 파늘루는 절대자였다. 그래서 그가 가르치는대로 기도하고 페스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파늘루의 설교를 들은) 여러 교회에서 용감한 부인들이, 몸에 생겨나는 (페스트 감염으로) 생겨나는 멍울은 인간의 몸이 감염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경로라며 ‘주여, 우리 자식에게도 그 멍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듯이...
그러나 파늘루의 설교는 모순적이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신부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면 모순이 되는 것이다. 파늘루의 설교가 정당하다면 페스트의 죽음 조차도 신앙을 가진 모든 이가 은혜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는 설교에서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남아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살아야합니다!)
그의 설교와 삶은 모순적이었다. 그 설교가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교구에서 배당해 주었던 아파트를 놓아두고,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어떤 나이든 부인의 집에가서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서 페스트로 죽었다. 오랑의 가장 존경받는 신부인 파늘루에게 리외가 준 마지막 배려는 그의 진료카드에 ‘병명미상’이라고 써주는 것이었다. 그의 신념대로 의로운 사람은 페스트에 걸릴 수 없으니까.
❖ 페스트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
(1) 병균도 불평등하다 보건 상태가 열악한 가난한 동네로부터 페스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도시가 폐쇄되었을 때, 가난한 집들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였지만, 부자들은 여전히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이 창궐하는 자기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부자들은 창궐초기 도시 폐쇄 이전에 떠날 수 있었다. 결국 죽은 사람들은 페스트와 최전방 전선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가난했다.
(2) 느리고 부정확한 정보가 더 큰 공포다 오랑의 보건당국이 시민들에게 페스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대비를 일찍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전염성이 강한 페스트에 대비할 수 없었다. 격리도 뒤늦게 이루어 졌다. 페스트는 비위생적인 오랑 변두리 지역의 자연적인 발병이었지만, 페스트의 확산의 책임은 알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시당국의 책임이었다.
(3) 오랑 시민들은 피해자다 오랑 시민들은 페스트의 피해자다. 그러나 페스트를 앓고 있지 않은 주변 지역의 사람들의 눈에 오랑 시민들은 잠재적인 가해이다. 페스트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오랑을 오가는 모든 길을 폐쇄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프랑스 총독부는 오랑의 시민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페스트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페스트 확진을 받지 않은 오랑 시민들조차도 고립감과 이별에 대한 슬픔이 빚어낸 외로움과 공포의 피해자들이다.
(4) 극한 상황은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낸다 페스트의 상황에도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상황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불안과 공포, 그래서 겪게 되는 경제적인 위축은 오히려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된다. 공권력이 페스트를 쫓는동안 잠시 숨어 있을 수 있는 범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만 죽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더 좋다. 더 많은 돈을 벌수가 있고, 자기의 잘못이 감추어 질 수 있다.
(5) 교회는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 전염병을 보는 교회의 시각은 전염병을 그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페스트 감염을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병에 감염된 이들을 모두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성직자는 의로우므로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성직자는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이 된다. 리외가 파늘루의 사인을 "병명미상"이라고 써 놓은 것은 파늘루에 대한 리외의 배려이자 비꼬기이다.
❖ 마치면서
까뮈의 페스트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친다. 소설 페스트로부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그에 감염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맡긴채.
어두운 항구에서 (페스트로 부터 완전한 해방을 축하하는) 공식적인 축하의 첫 번째 불꽃이 솟아 올랐다... 코타르도, 투루도, 그리고 리외가 사랑했지만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혔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항상 똑같은 것이다... 바로 그 때 리외는 결심했다.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이 겪었던 부당함과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남겨 놓기 위해, 그리고 단지 재앙의 한가운데서 배운 것을 말하기 위해,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들보다 찬양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끝마치려고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리외는 시내에소 올라오는 환희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런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왜냐하면 그는 즐거움에 넘치는 그 군중이 모르는 체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갖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다시 말해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그 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들 속에서 잠든 채 머물 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 여행용 가방이나 손수건, 그리고 서류 뭉치 같은 것들 속에서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페스트가 또 쥐들을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낸 후 거기서 죽게할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