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거짓말
철학자의 거짓말
프랑수아 누델만, 철학자의 거짓말 (서울: 낮은산), 2020
저자에 대해서
현재 뉴욕 대학교 철학 교수이며, 파리 제8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오랫동안 문학, 철학, 음악 등 문화예술과 관련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프로듀서 및 진행자로 활동했다. 쓴 책으로 《귀로 사유하기》, 《에두아르 글리상, 고결한 정체성》, 《건반 위의 철학자》, 《이미지의 부재》, 《장폴 사르트르》 등이 있다.
요약
이 책을 다 읽고 난 첫인상은 '찜찜함'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철학자들을 옹호하는 책인가?"하는 찜찜함. 그러나 곧 '그들과 나의 차이와 유사점'을 보면, 때때로 저자가 감싸고 싶어하는 철학자들의 약점을 '나'를 비롯한 목회자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저자 프랑수아 누델만은 철학에 문외한 일반인들도 한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철학자들의 이론과 삶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철학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철학자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사람들 몇몇은 아래와 같다.
루소 루소는 사회계약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계약론의 근간은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로우며 그렇기에 국민이 자유를 회복하는 것은 정당하고, 자유를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해야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회적인 계약에 의해만 가능하다는 것이 논지이다. 그는 한 개인의 인권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일생을 진실에 바친다" Vitam impendere vero 라는 말을 인장에 새기고 다녔다.
그러나 루소는 공공연히 "나는 진실을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것과 반대되는 것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면, 수천 개의 증거가 있다고해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거짓말과 중량모략이다."라며 자기만 빼고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를 주장했으나,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도 자기 아이들을 부양하지 않겠노라고 모두 공공보육원에 넣어 버렸다. 그러고는 "아이 다섯을 버린 덕에 사려 깊은 아버지가 되었노라"고 자기의 책 "고백록"에서 말한다. 인간으로서 아이들의 권리는 루소가 고려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루소는 외고집의 독선적인 철학자였다.
푸코 푸코는 '비밀', '부인', '거짓말'로 이어지는 단계들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전개해 나아갔다. 모든 것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에 맞서서 '자신의 진실'을 보여주어야한다고 말하던 푸코는 자기의 삶을 철저하게 숨겼고 동료들, 제자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의 변태적인 성생활과 그로인해서 생긴 병을 얻게 되었고, 그의 제자 기베르가 푸코의 숨겨진 삶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그의 이중적인 삶이 알려졌다.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나'는 '나'인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이며, 사정에 따라 매번 다른 가능성에 속한다고 성찰했다. 그리고 그 사정을 '상황' Situation 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상황에 따라서 '나'는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황을 모두 벗겨낸 자아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자면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과 사물들 바깥에 있는 세상에서 아무런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살아야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런 상황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이 변하는 이유이다. 그는 참 자아, 그리고 참 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본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를 바꾸는데 '참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글은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레지스탕스 조직에 들어가려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레지스탕스 조직에 들어가려는 계획을 포기한 뒤 글쓰기에 집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르트르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참여 지식인'이다.
들뢰즈 들뢰즈를 대표로 하는 단어는 '노마디즘'이다. 그는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였고, 철학의 단계로 승화시켰다. 기존의 가치나 철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마디즘은 학문적으로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고질적인 칩거 철학자였다. 그는 이미 만들어진 가치와 철학을 깨기 위해서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한다고 주창하면서도 정작 많은 대학이 그를 초청하였지만, 딱 한번 뉴욕의 강연에 갔을 뿐이다. 그리고는 매우 역설적인 말을 한다. "유목민은 이동할 필요가 없다".
보부아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페미니즘의 중요 기본서로 꼽히는 책이다.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을 요약하는 최고의 한 문장이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주인으로 살아야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든 선택권 역시 여성이 스스로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사회가 부여하는 어떤 이미지(수동적인 여성의 역할과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가 애인인 미국의 작가 넬슨 앨 그렌과 나눈 편지들은 그녀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을 순회하며 치른 강연과 토론에 지친 채 시카고에 도착한 뒤, 자신을 지식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보호와 사랑 받는 대상) 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사르트르와 자유 계약(결혼)을 맺었던 보부아르는 "(저는 당신에게) 아랍 아내만큼이나 친절하고 얌전하겠으며 순종하겠어요."라고 사르트르에게 약속했다.
키에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삶과는 반대되는 글을 쓴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자신이 무신론자였을 때 가장 신비주의적인 글들을 구상하였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에 가장 외설적인 글들을 썼다고 고백하였다. 종교 서적을 읽던 시기에 수도원에서 쓴 "유혹자의 일기"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키에르케고르는 결혼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비록 철학자가 그가 주장하는 삶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 지라도 그것을 비난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그가 이루어 내지 못하고 동경하는 영역을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일구어낸 산물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에서 만큼은 진실과 거짓이라는 도덕적인 잣대로부터 자유로와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의 말대로라면 철학자가 어떤 사상을 진술하면, 그것은 그 철학자의 사상이 아니라, 철학자가 되고 싶은 실재하지 않은 허구의 인물의 사상이 된다는 말일까? 그래서 철학자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왠지 철학자들이 불쌍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스스로 제시한 고매한 삶과 정반대의 삶을 살면서도 철학적 이상이 말하는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그 말이 참 좋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치자. 그리고 그 철학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는 사람은 그 말을 하고 글을 쓴 철학자보다 더 도덕적인 우위를 얻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고매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고 치자. 그럼, 철학자는 철학자로서의 본분을 다한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그 철학자들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적어도 루소는 대답하였다. "아이 다섯을 버린 덕에 사려 깊은 아버지가 되었노라"
'철학자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철학자와 설교자'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설교자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철학자인가 설교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