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탄생: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개성의 탄생: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해리스, 주디스 R.. 개성의 탄생: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곽미경 역. 서울: 동녘사이언스, 2019. (영어판, 2010).
저자에 대해서
해리스 Judith Rich Harris 는 브렌다이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으로 석사를 받았지만, 독창성과 독립성이 하버드의 기준에 미달되었다는 이유로 박사과정에 입학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학 거부를 알려온 편지를 쓴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장 조지 A. 밀러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면서 그 기준이 불합리했음을 증명해냈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쫓겨난 뒤에는 독립적으로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재를 집필했으며, 대학 교재에 언급된 불합리하고 실험 증거가 불충분한 이론에 반박하는 많은 논문을 심리학 관련 유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저자는 《개성의 탄생》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양육 가설 The Nurture Assumption》을 집필하였다.
요약
해리스의 질문은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조차도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란의 라단-랄레흐 빈자니(Ladan and Laleh Bijani) 자매는 썀 쌍둥이이다. 이 두 자매는 당연히 같은 부모 아래에서 성장하였으며, 일란성 쌍둥이이다. 머리가 붙어 있었던 이 쌍둥이는 뇌의 일부도 함께 공유하였다(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이들이 2003년 싱가폴에서 분리 수술을 하던 중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삶을 같이하였으나, 이 둘은 서로가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둘의 성격도 달랐다.
심리학자들의 이론이 라단-랄레흐 자매에게도 적용되는가?
심리학자들에게는 샴 쌍둥이가 서로 다른 성격과 정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수수께끼와 같은 현상이다. 진화 심리학, 사회 심리학, 행동 유전학과 발달 심리학의 이론들을 가지고 이들의 성격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하였지만, 시원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성격과 개성을 만드는 요인들을 나열한다.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서로 다른 환경과 쌍둥이 각각이 맺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다고 설명하는 것이 현대의 일반적인 해석의 경향이다. 그러나 라단-랄레흐 자매처럼 유전자도 동일하고, 성장과 교육 과정, 부모의 양육 방법, 가정 환경, 성장 과정에서 겪는 경험, 심지어는 학창 생활과 대학에서의 전공, 그리고 친구까지 모든 것을 똑같이 공유하고, 심지어는 뇌 마저도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경우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라단이 더 상냥했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왜 둘의 성격은 다른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왜 서로 "우리는 다른 두 사람이다."라고 인식하고 죽음을 무릎쓰고 분리 수술을 감행했던가? 심리학자들은 기존의 이론으로 이 자매의 경우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성격과 인성을 만들어 가는 세가지 체계
저자인 해리스는 기존의 심리학의 이론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라단-랄레흐 자매의 성격 차이와 개인 차를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설명하였다: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그리고 "지위 체계".
해리스는 인간의 성격을 만들어 가는 요인인 세 가지의 체계 중에서, 관계 체계와 사회화 체계는 나를 공동체에 적응을 시키는 작용인데 반해서, 지위 체계는 경쟁하고 공동체 내에서 타인들과 나를 서로 비교하면서 서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 세가지의 체계 가운데서 어느 하나가 강화되면, 우리가 흔희 말하는 "성격"과 "인성"이 만들어 지는데, 해리스는 기존의 심리학에서는 학문적이지 않다고 치부하며 고려하지 않는 결론이자, 이것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행동 특성 중, 하나가 강화되는 것은 외부의 요인이라기 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것이다.
해리스의 이 제안은 심리학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해리스가 예로 제시한 라단-랄레흐 자매의 경우를 속시원히 설명하는 심리학자들의 명쾌한 설명 또한 없다(그에 비하면 해리스의 설명이 더 명쾌하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해리스의 경우 라단-랄레흐 자매의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린 결론이 "타고나는 것"이라는 것이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한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변화될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용
한 인간은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지위 체계를 강화 시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을 교인들의 신앙생활과 연관시켜 보자.
그리스도 예수라는 한 줄기에서 저마다 나 가지들이 교인들이다. 같은 복음의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신앙인이 살아가는 모양은 저마다 다를까? 라단-랄레흐 자매처럼!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설명을 하자면, 각 교회의 목회자가 추구하는 목회의 방향(신앙인들의 맞이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목회자가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 중에 어느 것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교인들의 신앙 정체성을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흐름을 따라 설명하자면, 교인들이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강조한 본성에 초점을 두어서 반추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있다. 성도들은 본능적으로 신앙 생활을 함으로 경쟁적으로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서 기대한다(지위 체계). 그리고 이 기대는 교인들 마다 다르다(예를 들자면, 누구는 풍요를, 누구는 안전을, 누구는 위로를 기대한다.). 또, 기대로부터 시작하는 욕망의 크기가 교인들마다 모두 다르다.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의 크기가 다를 수 있고, 쟁취해 나가면서 지위 체계의 기재가 더 강화되어 더 큰 욕망을 빚어낼 수 있도 있다. 이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각각의 교인들이 가진 기대가 동일하거나 비슷하고, 그 욕망의 크기가 저마다 다를 때는 같은 복음의 DNA를 소유했다손 치더라도 충돌할 수 있다. 그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라단-랄레흐 자매처럼! 같은 설교를 듣고, 같은 예배에 참여하고, 같은 사역에 헌신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서로가 바라는 욕구가 다르고, 기대하는 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신앙공동체의 위대함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차이를 인정하지만 간격을 뛰어 넘는 하나됨"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욕구가 동일한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소망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이다. 욕구가 다르기에 성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소망을 갖고 있기에 연합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연합은 필요에 따라 모인 것이 아니라 소망을 쫓아 에 따라 연합한 것이 아니었던가!
성경은 사람의 시각을 바꾸라고 말한다.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교회의 역사에서는 이것을 "금욕"(자기 절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가 추구해야할 금욕은 (1) 내 이익을 위해서 상대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품어내는 넉넉함을 갖는 것이고, (2) 교인들의 관심과 요구가 자신의 필요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과 "한 몸의 지체로서의 일치"라는 신앙의 신비, 그 아름다운 기적을 나누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